[사 1:1,10-21, 히 11:1-3,8-16, 눅 12:32-40]


오랜만입니다. 만만치 않은 날씨에 건강하신지요? 여러분의 기도덕분에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달 사이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또 문제들이 발생하였군요.
오늘은 북한교회와 남한교회가 함께 지키는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인데, 이달 28일부터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다는 좋은 분위기에서, 광복절 예배를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의 우리 상황에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이 더욱 생생합니다.
민족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헌신해야 할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선포이십니다.
저희 부부는 주로 체코공화국 수도인 프라하에 머물렀는데, 숙소인 선교관에 한글이 깔린 컴퓨터가 있어서, 종종 한국소식과 교회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단기 선교팀과 관련하여 봇물처럼 쏟아진, 한국교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판과 냉소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나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것이 한국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불거진 대형교회 담임목사 세습과 비리, 한기총의 시청 앞 극우집회, 사학법재개정운동, 이랜드 문제 등에 대한 반감이고, 개혁하지 못한 한국교회에 대한 거부입니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제가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홍성현 목사님, 김형태 목사님, 유경재 목사님 등 교계 원로목사님들이 이번 사태를 두고, 깊이 참회하시며 새롭게 한국교회를 성찰하시는 모임을 시작하였고, 제가 그 일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국교회에 대한 집단적인 반감이 날로 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티기독교세력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위기의식이 없는 교계지도자들이 더 두렵습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하고 새로워져서 민족통일의 새날을 준비하지 못하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차원입니다. 예수님을 깨어 기다리려면,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깨어 준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깨어 준비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믿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본문은 믿음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히브리서 본문 1절을 같이 읽을까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이 대한 정의인데, 여기서 ‘실상’이란 단어는 실체나 보증, 확신으로도 번역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확신하고, 또 볼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믿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이 이 믿음으로,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았다고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신하며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의 가치와 힘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을 어떻게 확보될 수 있습니까? 믿음의 경지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우리 믿음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 예언서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살벌하리만큼 준엄합니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너희가 꼴도 보기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사, 제물, 분향, 집회, 절기준수, 기도는 이스라엘 경건생활의 중심인데, 하나님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거짓예배를 거부하십니다.
이 부분을 제1 이사야서라고 하는데,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신학적 반성입니다.
형식적 예배는 야훼신앙을 저버리는 것이기에, 이로 인하여 민족이 망할 것이라는 강한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길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왜 이런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였는지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한인교회 집사님의 도움으로, 한국 여행팀에 끼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보았습니다. 히틀러는 철로교통의 요지인 아우슈비츠에 3개의 수용소를 지었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정치범, 소련군인, 동성애자, 범죄인을 수용하였다는 2만평의 1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는 표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기만적인 구호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인 110만 명이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다는데, 어느 큰 방에 들어가니 방의 거의 반이 머리카락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가스에 탈색되어 노란색이었는데, 히틀러정권은 가스실에서 죽인 유태인들의 머리카락을 옷감을 짜는 데 사용하였답니다.
이 머리카락 40%를 섞어서 짠 남자 양복 안감은 비싼 제품이었다는데, 전시된 실물을 보니 머리카락이 보여 끔찍하였습니다.
이 수용소를 둘러보며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기독교 신앙이 독일군인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였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독일인의 95%가 루터교인이나 가톨릭 교인이었으니, 그들은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으로 어떻게 이런 짓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드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예배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결국 이런 예배를 드린 이들로 인하여,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독일은 망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회복하지 않으면, 자기만족적인 예배로 인하여 교회도 망하고, 우리 민족도 망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면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즘 감성을 자극하는 열린예배가 유행입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하고, 감격하고, 수시로 ‘아멘’하며 은혜롭게 설교를 듣습니다. 예배를 영화나 운동경기를 보듯, 즐기는 것입니다.
긜고 성공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참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굴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배와 삶이 일치되어야, 성전 뜰만 밟지 않고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사야서 본문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제물이 지겹고, 분향도 역겹고, 집회도 참을 수 없고, 절기들을 지키는 것도 짐이 되어 지쳤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전에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악한 행실을 버리라고 촉구하십니다. 또 옳은 일을 하고, 정의를 추구하고,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이 예배와 일치하지 않으면, 예배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턱이 없다는 이 말씀에서,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 행실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우리 믿음이 바로 세워지는 것이니, 예배회복에 힘써야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회복은 바른 삶의 회복에서 이루어집니다. 삶으로 믿음이 세워진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여행을 떠나며 설교를 위해 오늘 본문을 뽑아 가지고 갔는데 프라하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처음 누가복음 12:33을 읽는데, 이상하게 읽혔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여기서 배낭이 ‘배낭여행’으로 읽혔습니다.
여행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배낭여행’으로 읽혔나 봅니다.
여러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데, 하늘에 마음을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소유를 팔아서 나누면, 그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 되고 마음을 하늘에 두게 됩니다.
이 시대에 가장 진보적인 사람은, 이론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라, 삶이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삶이 진보적이려면, 우리가 나누고 섬기는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누고 섬기는 훈련은,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훈련됩니다.
바로 헌금이 나눔 훈련이고 봉사가 섬김 훈련입니다.
십일조헌금과 주일헌금 외에, 수시로 감사헌금을 드리거나 교우들을 사랑하고 연대하는 목적헌금을 드리는 일은 훌륭한 나눔훈련입니다. 중보기도, 안부전화, 문자 메시지도 섬김훈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복음에는 믿음으로 바르게 살고 예배하는 이들에 대한 은총이 나옵니다.
32절과 37절에 나옵니다. 32절은 이렇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비록 적은 무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37절은 전혀 뜻밖의 말씀입니다.
주인이 혼인잔치에서 늦은 시각에 돌아왔을 때, 종들이 문을 열어주려고 깨어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크게 칭찬합니까? 상을 줍니까?
그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기대 이상입니다.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손수 시중을 든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종들에겐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이고,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면 기대이상의 이 행동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깨어 바른 믿음으로 나누고 섬기고 정의로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를 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섬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미루어보면, 깨어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인으로 만드시고, 언제나 섬기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2007년 여름수련회가 이번 주 금요일로 다가왔습니다. 동동주와 함께!! 입맛이 당기지요?
준비위원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공동체를 주제로 수련회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데 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비전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미래의 준비입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비전은 꿈에 불과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깊이 친교하고 마음과 뜻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민족예수가족 여러분! 새로운 모든 가능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에 턱없이 부족한 삶을 사는 까닭에, 과연 예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하고 낙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세워주십니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면,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이 약속에서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나아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에서 하나님에게 힘을 받아, 새 세상을 준비하는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예배를 회복하면, 새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국민들의 한국교회에 대한 거부분위기가 팽배한 현실에서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도 결코 비판에서 면제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생기넘치는 공동체로 세우고, 교회개혁에 힘 쏟으면, 이 쓰라림이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예배와 바른 삶으로, 믿음을 회복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새 세상을 준비하는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빕니다.